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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하여 이곳에
전시 《끝없는 여지》

​김송요

  민주인권기념관에 간 날 나는 버스를 타고 남영역이 아닌 후암동에서 내려 걸었다. 남산이 보이는 언덕에서 느릿느릿 주변을 둘러보면서 갔다. 어릴 적까지도 TV방송에선 ‘남산으로 끌려간다’는 말을 쓰고는 했다. 후암동에는 오랫동안 동네를 지키던 빌라와 작은 골목들 사이엔 새하얀 카페도 생기고 글로벌시대의 인재를 키우기 위한 영어학원도 생겼다. 거기서 조금 더 걸으면 한때는 봉제공장이 모여 있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한 대학교가 있는 청파동을 지난다. 이 동네에서 서로를 눈송이라고 부르는 젊은 여자들은 달방살이를 하고 위장취업을 하면서도 서울대 다니는 남자를 만나려고 대학갔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던 또다른 젊은 여자들의 후배다.
  그곳들을 지나면 비로소 남영동이 등장한다. 정확히는 갈월동을 지나야 남영동이다. 출구가 하나밖에 없는 1호선 남영역은 숙대생들이 열차를 타고 고교야구의 전성기에 이름을 떨치던 선린상고 학생들이 열차를 타고 용산역에서부터 여기까지 뻗어 있는 전자상 직원들이 열차를 타는 곳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먼저 많은 사람들은 ‘남영동’했을 때 다른 것을 떠올릴 것이다. 혹은 다른 곳을 떠올릴 것이다. 그것은, 아니면 그곳은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현재 대공분실 건물은 민주인권기념관이 되었다. 입구로 들어서면 공간의 볼륨감과 에너지가 선명하다. 그러나 그 에너지를 단순히 스산하거나 음침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해가 지기 전까지만 문을 여는 벽돌 건물의 고즈넉함이 민주인권기념관이라는 새 이름과 맞물려 퍽 평화로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10월 5일부터 18일까지 이곳 민주인권기념관에서는 전시 《끝없는 여지》가 열렸다.
  기존의 공간을 전시장으로 탈바꿈했을 때 가장 먼저 궁금한 것은 주도권을 공간이 가질 것인지 전시가 가질 것인지다. 관객은 이곳을 단순히 ‘독특한 전시공간’이라고 하고 말 수도 있고, 공간에 아주 많은 의미부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간에 이 공간의 특성을 생각조차 않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 전시공간은 대수롭지 않은 존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천장이 얼마나 높은지, 어느 종류의 조명 몇 개가 어떤 방향을 얼마나 밝게 비추는지, 벽은 어떤 색이고 내부에선 어떤 냄새가 나는지는 관찰대상에서 밀려날 때가 많다. 그러나 이 공간은 문득 한 번 둘러보게 되는 힘이 있다. 단순하게는 화이트큐브에서도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문법에서도 벗어난, 대단히 매끈하지도 투박하지도 않고 다만 아주 친숙한 현대 한국 건물의 인테리어를 겹쳐보게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나무
바닥, 흰 벽, 붉은 타일로 둘러싸인 공간에 작품들이 있다. 모든 것들은 순탄하게 재생되고 열람되는데, 그 어떤 결함도 느껴지지 않는데, 그 평화를 공간이 삐그덕거리며 습격한다. 반대로 공간은 분주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지만 작업의 존재감이 겉옷처럼 포개져서 그 무게를 감싸거나 덮는 경우도 발생한다. 전시는 이 공간에 가만히 섞여 있으면서도 새로 입주한 티를 내기 때문에, 마치 여기에 잠시 세 들어 있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본래 전시의 속성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을까? 어떤 공간을 다른 세계에 세 주는 일. 전시의 물성은 공간에 빚을 지기 마련이므로.

  작품들은 이 공간의 뿌리, 줄기, 가지를 응시하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 관계맺기의 양상은 모두 다르다. 엄지은은 〈빈 부피만큼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공간 군데군데에 휘장-우산을 만들어 배치한다. ‘같은 우산 아래 선다’는 말이 갖는 연대의 의미는 빗줄기를 피할 수 없는 휘장 앞에선 동일하게 쓰이지 못한다. 광택이 감도는 벨로아 천으로 만들어진 우산은 어디로든 가서 이 전시를 상징할 수 있다. 강라겸의 유한한 재료로서의 피부, 폭력의 역사를 기록하는 가이드〉는 공간을 작업실 삼고 관객을 작업의 일부로 포섭하여 이들의 몸에 문신을 새긴다. 문신이 새겨진 관객은 전시장 바깥에서도 자신의 살갗을 보며 이 전시와 공간을 생각할 것이다. 자진한 흔적과 강제된 낙인 사이 아득함을 ‘체감’하면서. 한편 전시기간 중 정해진 시간엔 세 퍼포먼스를 볼 수 있었다. 단 한 명의 관객만 입장 가능한 스카이차에서 아홉 편의 공연을 관람하는 〈내일의 연대기〉(강은구)와 공간의 온도와 공기를 직접적으로 감각하는 〈목소리와 온도〉(오카모토 하고로모), 〈주체하는 신체〉(주혜영)다. 이미 일회성을 갖는 퍼포먼스 관람은 이 전시에서 개인의 체온과 위치에 의해 더더욱 개인적이고 공유불가능한 것이 된다. 오로지 이 공간에서만 한시적으로 만날 수 있었던 퍼포먼스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기록되고 회상될 수밖에 없다.
  전시는 민주인권기념관 건물을 두루 썼다. 4층에서는 정민지의 〈클라우드〉 〈의외의 사실〉과 함께 러닝타임이 비슷한 영상들이 재생 중이다. 계엄령과 긴급조치는 둘 다 martial law라고 적는구나, 메시아라는 말을 저럴 때 쓰는구나, 학교 다닐 때 벽치기를 계속 시키던 선생님한테 교련 시간 같다고 했다가 째림당한 적이 있었는데, 같은 생각을 하면서 계속 영상을 둘러본다. 아주 집중하다가도 눈 둘 곳을 찾지 못하기도 한다. 핸드헬드 카메라의 리듬이 저벅저벅 훑는 공간, 도망치듯 차에 실려 주마간산으로 지나치는 공간을 앉아서 응시도 하고 어설프게 스쳐보기도 한다. 화면이 ‘나는 공산당이 싫은’ 이승복과 대공분실의 건축철학 등을 휘릭 넘나들 때 관객의 고개도 휘릭 넘어가는 것을 본다. 라켓을 휘두르며 ‘뭐 여튼’으로 의뭉스레 눙쳐지는 의구심을 일방적으로 서브-리시브하는 것도 본다.
  이유지아의 〈말랑말랑한 모듈러#2〉는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의 흔적을 내보이는 건축물과 대공분실이라는 공간의 옛 정체성을 마주보고 서게 만든다. 관객의 우왕좌왕을 퍼포먼스 삼듯이. 배한솔의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는 1호선을 감도는 기운과 1호선의 역사를 꿰어낸다. 오늘날 1호선을 맴도는 이들은 이 영상에서 구체적인 역사 그리고 인물 군상과 연결된다. 1호선 개통식, 승객을 기록하는 CCTV화면, 지하로 다니는 열차를 위한 땅굴들은 완결된 의미화가 불가능한, 현재진행형의 살아있는 존재로 다시 읽힌다. 엄지은은 〈비와 빛〉에서 종교 안에서 스스로 안식을 찾아버린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뒤쫓는다. 차분한 내비게이션의 음성과 수색하는 듯한 카메라의 시선은
교묘한 간격으로 긴장을 유지한다. 옆에 있는 정민지의 〈의외의 사실〉과 나란히 보면 내비게이션 괴담도 절로 떠오른다. 분명히 경로를 벗어났는데 자꾸만 우회전, 우회전, 엉뚱한 곳으로 안내를 이어갔다던 내비게이션 이야기. 〈의외의 사실〉이 포털을 통과하면 펼쳐지는 다른 세계를, 그리고 그 세계가 송두리째 바꾼 한 사람의 삶을 상상한다면 〈비와 빛〉은 아주 구체적인 장소와 주제를 다루면서 기이한 다큐멘터리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정명우의 〈벽치기〉는 대공분실의 테니스장을 복기하며 그로부터 파생되는 이야깃거리를 읊는다. 벽치기의 운동성과 이야기의 리듬감이 만드는 열기 내지는 활기의 불가해함이 감돈다. 내비게이션의 목소리, 인공지능의 목소리는 작가와 이야기 사이 한 꺼풀의 거리감을 만드는 것 같다가도, 작가의 목소리라면, 성우의 목소리라면 뭐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따라붙는다. 이미 이것은 당사자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당사자여야만 이야기할 수 있는가? 전시는 윤리적인 선택과 
날카로운 시선을 견지하지만, 발화자가 될 자격이나 발화자가 해야할 말에 대해 단언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나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나는 내레이터가 될 수 있다.

  3층으로 내려가면 복도와 방과 화장실로 나뉜 개별 공간에서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배선영의 〈가령〉은 전시공간에 도달하기 위해 지나온 길을 되짚어보게 한다. 전쟁통에는 수많은 사람이 죽고 경제발전이 지상 최대의 미션인 것처럼 여겨지던 때는 미싱이 바쁘게 돌아가던 동네를 거쳐 도착한 이곳에서 작업복을 만드는 손길과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은 지금도 어디에나 있고, 흙더미 속 남겨진 작업복의 주인들뿐만이 아니라 오늘 새벽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 역시도 유령처럼 혹은 투명인간처럼 눈에 띄지 않은 채로 자신의 작업을 했을 것이다. 이이난의 〈나란히 서는 시간〉은 과거 고문피해자이자 현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해설자로 일하는 유해우의 목소리를 세 개의 나란한 스탠드마이크와 병치한다. 헤드셋을 끼기 전 눈으로 본 장면과 헤드셋을 낀 뒤 귀 기울이게 되는 이야기 사이의 낙차는 틀림없이 거리감을 만들지만 어쩌면 그 거리감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트랙이 완전히 재생된 뒤 다시시작하기 전 아주 짧은 간극은 꼭 진공상태를 현장음으로 기록한 것처럼 ‘들린다’. 귀가 듣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맥박 소리도 들린다. 쿵 쿵 쿵 쿵. 내가 살아있는 소리. 그 당연한 소리가 마음을 이상하게 한다. 이토록 타인인 존재들이 서로를 말하고 들으려고 애쓰는 장면을 보면서.
  강은교의 〈Clear Resolution〉은 수조 속에 든 스피커로 이근안의 목소리를 재생한다. ‘그 시커먼 검은 벽돌 건물을 보면 그렇게 가슴이 아파’라는 그의 말은 이 공간이 대공분실로 쓰이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의미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한 말인지 몰랐을 때와 알았을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르고 이야기는 하나도 선명하게clear 전해지지 않는다. 온전한 전달은 고의로 또는 피치 못하게 실패하고 만다. 오롯한 회고와 오롯한 재현의 불가능성 앞에서 물음표가 뭉게뭉게 떠오른다. 이 건물에 대해 얘기하는 그 목소리를 물속에서 울리게 했을 때 어딘가가 뻥 뚫리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떻게 막을 수 있나? 설령 마음이 뚫려버린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을 어디에 물을 수 있는가? 생각은 계속해서 뻗어나간다. 〈비와 빛〉에서부터 생각하던 것이다. 고통을 주는 게 일인 사람–고통을 덜려고 회개하는 사람–고통이 신의 뜻이라고 믿는 사람이 선량하지 않게 뒤섞인 광경을 생각한다. 누구는 ‘내가 누군 줄 알어’ 한 마디로 별일을 다 할 수 있던 과거를 나쁜 놈들 전성시대로 칭했다지만, 통신과정으로 신학을 배워 디지털신학대학에 진학한 이근안이 목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인터넷으로 쉬이 접할 수 있는 현대에 느끼는 괴로움과 일그러진 감정은 그렇게 낭만화할 수조차 없다. 대체 어떤 식으로 말해야 윤리적이고 정의로운가? 물비늘은 어째서 반짝거릴까? 〈말랑말랑한 모듈러〉가 놓인 방을 들어갈 땐 본능적으로 킁킁거리고 말았다. 비누향은 어째서 산뜻할까? 누군가에겐 그 냄새가 영원한 고통의 냄새였는데도. 인간과 공간의 소통을 꾀했다는 건축가의 휴먼스케일은 어떻게 신체를 억압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쓰인 걸까? 여전히 사람들은 그가 만든 건물을 사랑하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물론 사람들은 민주인권기념관 앞에서도 사진을 찍는다. 다만 잘 웃지 않을 뿐이다. 굳은 얼굴은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만, 마음이 불편한 일이 잘못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진뿐만이 아니라 전시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다.
  1층으로 돌아오면 한쪽 구석에서 큰 소음이 들린다. 그런데도 의문스럽지가 않았다. 아마도 편견 때문이다. 이 공간 어딘가는 방음이 되지 않거나 무서운 소리가 날지도 모른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그 소리는 오카모토 하고로모의 〈목소리와 온도〉에서 나는 것이었다. 1층 전시관 구석에서 웅웅거리며 울려퍼지는 소음이 다시 한번 발목을 잡고 체온을 요구했을 때, 비로소 공간 전체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여전히 이곳은 불안하게 느껴지지만 이곳을 폐허로 두고 도망쳐나갈 수는 없다.
  건물을 빠져나오면 5층 창문에서 기념관 밖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닥뜨린다. 김예슬의 〈분실〉이다. 들어올 때부터 바닥으로 쏟아지던 물줄기는 전시를 다 보고 밖으로 나설 때도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공간이 문을 닫는 시간까지 마당에 머물렀다. 물줄기가 하나하나 멈추고 창문이 하나하나 닫혔다. 낯선 이들이 방을 빼고 난 뒤 이 공간은 어떤 표정으로 남을까. 젖은 바닥에 바람이 불었다. 돌아갈 길이 막막했다. 후암동 고개에서 남영동으로 가는 길은 마치 오래되고 아름다운 공간을 향하는 여정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너무나 별나게 여겨지기도 한다. 서울은 계속 살아서 추억거리도 되고 유행도 되는데, 어떤 시간은 거기에 그대로 고여 있는 것만 같구나. 이럴 때면 기억하기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제아무리 오래 해도 숙련자가 될 수 없는, 기억하기.

  《끝없는 여지》에 참여한 작가들은 작가인 동시에 같은 학교 같은 과정에서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다. 이들은 민주인권기념관이 대공분실이던 시절 국가안전기획부로 쓰던 건물에서 공부한다. 중앙정원을 둔 네모난 건물에서 학생들은 종종 길을 잃는다. 민주인권기념관 1층에 쓰여 있는, ‘1층부터 쭉 이어진 나선형 계단은 사람들의 위치감각을 상실케 한다’는 글을 읽고 불쑥 그 건물이 생각났다. 민주인권기념관에 테니스장 자리가 있듯 그 건물에는 축구장 자리가 있었다.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마음의 알레고리가 끊어지는 광경을 상상하면서 다시 〈벽치기〉 화면을 본다. 아래층 욕조 속 행운목 〈기념비〉와 죽은 식물 조각을 보석 모양의 투명한 레진에 가둔 〈클라우드〉로 시선과 생각이 넘어간다. 창밖의 울창한 나무들과 대비를 이루는 두 종류의 기념비는 영원을 기약하지는 않을지언정 현장을 지키고 있다. 청파동의 젊은 여자들처럼 학생이자 작가인 이들 역시 과거의 젊은이들을 바라본다. 이 공간을 장악한 과거의 폭력을 정면으로 마주했던, 그때 그 학생들을.
  ‘이미 늦은 인사와 너무 이른 애도’ 사이에 놓인 현재, 이 전시를 만들고 바라보는 태도와 마음은 무엇일까. 무엇‘이어야 할’까 질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근사하고 엄중하고 모든 것을 치유하는 정답이 있지는 않을 테니까. 여기서는 그저 관객의 입장에서 쓸 수 있는 것을 썼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공간에서는 앞으로 계속 전시가 열릴 것이고 사람을 드나들게 만드는 활동이 이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응답할 것이고, 기억하는 데 성공도 실패도 할 것이다. 그런데도 여지가 있다. 끝없는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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