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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없는 문장들의 덜그럭거림, 그리고 비선형적 믿음의 동기

 

김선옥(독립 큐레이터)

 

  전시장 입구부터 동선을 가로막기 시작하는 사물들은 군집을 이루며, 그리 높지 않은 높이로 바닥에 놓여있었다. 발에 걸려 (그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시선은 자꾸 아래를 향해 길이 나 있는 방향을 살폈다.

  하얀색의 고운 모래가 정교하게 다듬어진 합판들 사이에 견고하게 쌓여 있었고, 마른 나뭇가지는 아슬아슬하게 합판 위에 걸쳐져 있거나, 합판의 매끈한 구멍을 통과하고 있었다. 작은 돌탑이 있었고, 우레와 천둥을 의미하는 한자 ‘雷’가 쓰인, 공중에 매달린 돌 형상이 보였다. 기원이 다른 사물들은 무질서한 풍경 속에서 동시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이 풍경은 긴장의 상태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균형을 잡기 위해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 만큼 버티거나, 다른 사물을 적극적으로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장 한쪽 전면에 나 있는 유리창으로 빛이 많이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이 공간은 남향으로 보면 될까. 바닥의 오브제들이 일시적으로 향하고 있는 방향은 필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작가는 이것을 <방지턱>(2017/2021)이라 했다. 그가 (여전히) 길을 내어 안으로 들이고, 또 막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풍수지리의 ‘음양오행설’은 서로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상생’에 근간을 두고 있다. 《워킹 메들리》에서 사물들의 배치는, 서로 배척하며 부정하는 ‘상극’ 또한 오행의 작용임을 잠시 망각하게 만든다. ‘상생’의 효과를 기꺼이 믿고 싶어진다.

  과거 공권력의 고문 시설이 남겨진 민주인권기념관 곳곳에 배치됐던 벨벳 소재의 우산(<빈 부피만큼의 믿음>(2019)), 혹은 실제 망원경을 방수포로 덮어 기존의 작동법마저 소거한 <망원경>(2017)처럼 엄지은은 사물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채 새로운 시공간에서 다른 역할로 존재하도록 만든다. 이번 전시에서 끝이 뾰족하게 깎인 지팡이 발은 이제 직립을 유지하기 어려운 도구가 되었다. 지팡이로써 유용하지 않은 존재가 된 사물은 더는 누군가의 걸음을 돕는 보조적 장치가 아니다. (<이제는 땅을 짚을 필요가 없구나 어깨들아>(2021)) 작가의 작업에서 효용의 가치를 벗어난 사물이 기존의 모습과 전혀 다른 외양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사물이 작동하는 방식이 특히 달라진 것이다.

 

  엄지은의 영상 작업은 인과가 뒤엉켜 하나의 맥락으로 수렴되지 않는 문장들이 모인 구조로 볼 수 있다. 작가의 서술 방식에서 주어와 술어의 위치는 도치되었고, 문장 사이에는 엉뚱한 접속사가 들어가 있다. 여러 사건이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선형적 관계가 상실된 맥락에서 시간은 특정되지 않는다. 부연 설명이 필요하나 주석이 생략된 모호한 문장들은 우리에게 역설적으로 새로운 의미 작용의 과정을 제안한다. 작가의 서사 구조를 이해하는 방식은 일반적인 통사 구조를 파괴하여 기존의 의미 해체를 시도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것은 고정된 언어로 환원되지 않도록, 볼 때마다 매번 다른 의미를 획득할 수 있게 우리의 직관적 ‘감각’에 더욱 힘을 주게 만든다. 세계의 재현에 기인하지 않는 작가의 작업에서 사실과의 부합 정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일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그의 말과 이미지는 분절된 상태로 덜그럭거린다. 그것은 불안하지만, 불완전한 것은 아니다.

  휘어진 철판에 낮은 높이로 설치된 영상작품 <해일의 노래>(2021)는 시선의 위치를 여전히 아래로 고정한다. 하룻밤 사이에 해일에 떠밀려간 창고에 쌓여있던 그 많은 소금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1인칭과 3인칭을 넘나드는 화자의 ‘말’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진실인가? 총 네 개의 시퀀스로 구성된 영상은 각각 비선형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로 현실에 개입한다.

 

  1. 말을 잃은 자의 말이 사실과 거짓이 구분되지 않은 채 여기저기 흩어진다. 거대한 천재지변은 불가항력을 핑계 삼아 세계의 많은 부조리와 불합리함마저 모조리 덮고 은폐한다.

  2. 고요한 갯벌을 배경으로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의 후렴구 “그 모든 사랑을 다 담을 수는 없겠네”가 반복적으로 재생된다. 절대적 존재는 무한한 원동력의 근원이지만, 보이지 않음을 핑계 삼아 그 힘에 의지하는 대상을 쉽게 무력화시킨다.   

  3. 세계를 창조하고 이동시키는 움직임의 주체가 등장한다. 얕은 해수면 아래, 투명하고 작은 세계에서 작가의 유연한 손가락 움직임은 사물들의 질서를 뒤바꾼다. 갯벌의 진흙 속 단단하게 박혀있던 돌은 수면 위로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4. 아래를 향했던 시선이 이제 위를 향하기 시작한다. 포항 민요 <망깨소리>는 일명 ‘말뚝 박는 소리’로 저수지의 둑을 쌓거나 다리를 놓을 때 말뚝을 박으면서 부르는 소리이다.

  ‘말’을 잃어버린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소금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이미지의 근저에 붙어있는 수많은 (부유하는) 말들과 닮지 않았는가. 우리는 소금의 존재를 믿어야 할까,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존재의 힘을 믿어야 할까.

 

  엄지은이 <워킹 메들리>(2020-2021)에서 선택한 수행적 전략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과정을 화면에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의 몸짓은 개인적 경험과 그가 만드는 이야기 사이에서 이미지를 현실화하는 과정이 된다. 작년 겨울, 그는 발의 근육에 힘을 주어 ‘걷기’를 시작했다. 핸드헬드로 촬영되어 미세하게 흔들리는 화면 속 발걸음은 살얼음 바닥을 자박자박 밟는 소리와 맞물려 일정한 리듬이 되었다. 반복적인 ‘걷기’ 행위에서 나타나는 규칙적인 패턴은 목적지에 종착하기 위해 필요한 보(步)만큼이나 축적되는 시간이 기록된 형태와 같다. 앞사람을 놓치지 않고 적당한 거리 두기를 유지하며 이동하는 작가의 신체는 타인과 공존하는 시공간을 감각하는 행위의 주체로 존재한다.

  눈이 덮인 산을 한참 오른 운동화는 축축하고, 양말은 살짝 젖었을 것이다. 그리고, 발은 차가울 것이다. 예닐곱 사람들이 모인 행렬의 온기는 겨울의 냉기를 가시기엔 부족한 것일까.

  산을 오르고 걷기를 반복하여 숨이 차올라 더는 내뱉을 수 있는 날숨이 사라질 때,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목탁 소리에 맞춰 “옴 도비가야 도비바라 바리니 사바하”가 반복해서 들리기 시작한다. 이것은 ‘눈이 어두워 광명을 구하고 싶을 때’ 염송하는 <관세음보살 42 수주진언>의 8수 진언이다. 믿음은 간절한 바람이 있을 때, 그것과 현실의 간극이 클수록 도리어 더욱 강력해지는 동력이 된다. 목소리를 통해 입 밖으로 믿음의 언어를 발화하는 염불은 자신의 욕망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또 다른 믿음의 실천 의지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언어로 믿음을 증명하는 행위를 계속할 것이다. 비록 그것이 허상인 줄 알면서도. 다른 누군가는 또 다른 언어로 그 믿음을 의심하는 행위를 지속할 것이다. 그것이 모두 허사는 아닐 것이라는 또 다른 믿음으로. 믿음의 모양은 이토록 다르다. 

The rattling of unannotated sentences and the motivation for nonlinear beliefs

 

Seon-ok Kim (Independent curator)


 

  Objects that block the pathway from the very entrance of the exhibition space formed a cluster and were placed on the floor at a low height. To prevent them from tripping over and falling, the viewer’s gaze was kept downward, keeping an eye out for the path. 

  Fine white sand was piled firmly between elaborately cut plywood and dry branches were barely hanging over the plywood or passing through smooth holes in the plywood. There were a small stone pagoda and a stone figure hanging in the air with the Chinese character ‘雷(lei)’ which means thunder written on it. Objects of different origins were simultaneously operating in a disorderly landscape. What is clear is that this landscape was not in a state of tension. The objects were holding up enough to not collapse on their own or were actively relying on each other to keep their balance. Considering that a lot of light comes in through a glass window on the front side of the space, can this space be viewed as facing south? The direction in which all the objects on the floor are facing is probably not a coincidence. The artist called this piece Speed Bump(2017/2021). What did the artist try to bring in through making a path and to keep out by blocking? The 'Yin-Yang Wuxing' theory of feng shui is based on 'xiangsheng' living in coexistence with each other. The arrangement of objects in 《Walking Medley》 makes us forget for a moment that ‘xiangke’, which rejects and denies each other, is also an action of the five elements. It makes you willing to believe in the effect of ‘coexistence’.

 

  As in the case of velvet umbrellas that were placed in various spots at the Memorial Hall for Democracy and Human Rights where torture facilities of the past are still present (An Empty Belief(2019)) and Telescope(2017) in which an actual telescope was completely covered with a tarp that its original function was erased, Jieun Uhm makes objects lose its original function and exist with a different role in a new time and space. In this exhibition, the sharp-tipped cane has now become an implement that cannot maintain an upright position anymore. This object that has become useless as a cane is no longer an auxiliary device to help someone walk (Now, there is no need to touch the ground, shoulders(2021)). Objects in Uhm’s works that deviate from the value of utility do not exist in a completely different appearance from the existing ones. The way things function and operate has changed in particular in the process of acquiring new meaning.

 

  Uhm's video work can be viewed as a structure in which sentences do not converge into a single context due to entangled cause and effect. In the artist’s narrative style, the positions of the subject and the predicate are inverted, and seemingly random conjunctions are inserted between sentences. In the context of several events proceeding simultaneously and the loss of a linear relationship, the time is not specified. Ambiguous sentences that require further explanation but omitted annotations paradoxically suggest a new process of meaning. The method of understanding Uhm’s narrative structure is close to the process of deconstructing the existing meaning by destroying the general syntactic structure. This strengthens our intuitive ‘sense’ so that we can acquire a different meaning each time we see it, so as not to be reduced to a fixed language. The degree of conformity with facts is not very important in Uhm’s work that is not caused by the representation of the world. Her words and images, which are difficult to define as a singular meaning, rattle in the segmented state. It is unsettling, but it is not incomplete.

  The video work Song of the Storm Surge(2021) installed at a low height on a curved steel plate still fixes the viewer’s gaze downward. Where did all that salt accumulated in the warehouse washed away overnight by the storm disappear? Where and to what extent are the narrator's 'words' that cross the 1st and 3rd person true? The video, which consists of a total of four sequences, intervenes in reality as a story that unfolds non-linearly.
 

  1. The words of the speechless are scattered here and there without any distinction between truth and lie. Using force majeure as an excuse, huge natural disasters cover and conceal the absurdities and irrationalities of the world.

  2. Against the backdrop of a quiet mudflat, the chorus ‘I can’t contain all of that love’ of Hymn 304 “The Love of God is Greater Far” is played repeatedly. Absolute existence is the source of an infinite driving force, but it easily neutralizes its objects that depend on its power under the pretext of being invisible.

  3. The subject of movement that creates and moves the world appears. Under the shallow sea level, the artist's fluid finger movements in the small transparent world change the order of things. Stones that have been firmly embedded in the mud of the tidal flat begin to reveal themselves above the water surface.

  4. The gaze that used to be downward now begins to turn upward. Pohang folk song “Song of Mang Kkae” is a so-called 'stake driving sound', which is sung while hitting the stakes when building a reservoir or a bridge.

 

  The story of salt told by the storyteller who lost ‘words’ resembles the numerous (floating) words attached to the images. Should we believe in the existence of salt or listen to the storyteller? Or should I believe in the power of an invisible being?

  The performative strategy chosen by Uhm in 《Walking Medley》(2020-2021) is to visually reveal the process of moving her own body on the screen. The artist's gesture becomes the process of realizing the image between her personal experience and the story she creates. Last winter, she started ‘walking’ by strengthening the muscles of her feet. The steps on the screen which were handheld filmed and shaken slightly became a constant rhythm, interlocking with the sound of stepping on the thin ice. The regular pattern that appears in the repetitive ‘walking’ behavior is like a form in which the accumulated time is recorded as much as the steps required to reach the destination. The artist's body, which moves while maintaining an adequate distance without losing the person in front, exists as the subject of the act of sensing time and space coexisting with others.

  Sneakers that climbed the snowy mountain for a long time must have been damp and the socks would have been slightly wet. And the feet must be cold. Is the warmth of the procession of six or seven people not enough to dissipate the cold of winter?

  When there is no breath to be exhaled due to continuous climbing up and down the mountain, “Om dobiya dobibara barini sabaha” begins to be heard repeatedly in line with the sound of a wooden bell resounding from somewhere. This is the eighth mantra of “Guan Yin Bodhisattva 42 Suju Mantra”, which is recited ‘when it is dark and you want to seek light’. When there is a desperate wish and greater the gap between the wish and the reality, the more powerful faith becomes a driving force. The chanting that ignites the language of belief out of one's mouth is another will to practice faith, hoping that one's desires will come true.

  Someone will continue to prove their faith in their own language, even if they know it's an illusion. Someone else will continue to question that belief in another language, with another belief that it will not all be in vain. The form of faith is so diffe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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